<% mlink="01" %> <% ulink="01" %> 벽산문화재단
 
LOCATION : HOME > 재단 뉴스 > 재단 뉴스
벽산문화재단 후원작가 윤상윤 개인전 <뫼비우스> 2014.09.29
  관리자 6322

이미지의 기원 또는 우상이 파괴되는 곳

 

김노암(문화역서울284예술감독)

 

각계각층의 다종다양한 사람들이 더할 나위 없이 일상의 평범(平凡)이 가득 찬 곳에 있다. 무언가 가득 찼다는 느낌이 드는 곳에서 회합을 갖고 있다. 불안하게도 극단적인 투쟁과 결기가 벌어지는 어떤 사건의 현장일지도 모르는 곳임에도 평온하고 평온한 풍경이다. 이곳은 존재하지만 존재한다고 말 할 수도 없는 공간이다. 한 시인이 최근에 발견한 사실 또는 단어를 발표하거나, 풀리지 않던 우주의 비밀을 연산하는 수학자가 등장하는 곳이다. 꿈속의 이상적인 화실이 등장하고 멋진 예술가와 그의 모델이 있다. 아이들은 다른 세상을 상상하기 위해 모인 것처럼 보인다. 나룻배는 강 위를 거슬러 어디론가 나아가고 있다. 이들은 무언가에 홀려있거나 홀려있음 그 자체로 등장한다. 실체가 불분명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곳. 그러나 그들 사이에 어떤 대화가 있었는지 확인할 수 없는 장면들의 세계다. 이상한 빛이 비치고 푸른 하늘에 물고기들이 떨어져 내리는 날 집밖으로 나선 여행자들의 회합일지도 모른다. 우연과 필연의 과정을 통해 자신이 살던 곳에서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같은 문제로 당황하고 있는 낮선 사람들과 함께 있게 된. 사람들은 배우고 경험하고 성장한다. 만남과 대화는 개인의 진화(進化)를 상기시킨다. 개인의 성장은 일개 개인의 성장이 아닌 그 개인이 속한 전체 종의 성장이다. 그것이 아무리 작고 더디더라도. 익숙한 듯 기이한 풍경. 모호하고 복잡한 경우 잠시 머물게 되는 사람의 의식 속의 어느 공간. 그곳에서 다른 존재로 변신한다. 이곳은 과거 현재 미래가 함께 모여 있는 곳으로 메마른 공기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액체로 가득 찬다. 물속에서 유영하던 아주 작은 존재에서 점차 스스로 호흡하고 자의식을 갖고 자신과 이들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한다.

 

강물이 모여 바다를 이루는 유비(analogy)처럼 유동하는 세계는 무수한 차원으로 분해되기도 하고 하나의 몸으로 뭉쳐지기도 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과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불려와 있는 곳은 마치 미드의 한 시즌의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른 시즌이 되면 이 드라마는 같은 듯 다른 흐름으로 유동하는 또 다른 드라마가 될 것이다. 각각의 차원으로 무한히 분해되어 가는 과정을 그려나가는 것은 장신의 정신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고 모든 것이 부재하게 되는 공간에서 불굴의 헤파이토스가 마술을 부리는 곳이다. 이미지는 마술처럼 한 방울의 액체와 약간의 무기물을 재료로 화려한 광채를 뿜는 운명으로 변화한다. 밤하늘의 성좌처럼 불가능한 시간과 공간을 격해서 감지되는 이미지는 본래 신비인 것이다.

 

윤상윤의 그림은 정보의 바다에서 섬처럼 격리된 이미지들이 한 장소에 모인 마술적인 혼융의 풍경이다. 이미지는 미지의 수상도시에 모인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가 생각함으로 해서 그것은 존재하게 되었다. 존재의 부재에서 존재를 상상하는 것은 불안의 숙명을 가로지르는 노동이다. 아름다우면서도 불길한 풍경이 화가의 노동을 통해 만들어진다. 기원을 알 수 없고 그 최종 국면도 알 수 없는 무한히 반복되는 변형하고 증식하는 이미지들은 일견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신의 창조와 생명력의 분출에 휘말려 낯선 곳에 모여 공간을 만들어내는 윤상윤의 이미지는 프랑스의 거장 뫼비우스(장 지로Jean Giraud)가 창조한 세계와 거울상처럼 닮았다. 이곳은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가 창조한 이미지의 또 다른 형태이기도 하다. 안과 밖, 위와 아래, 과거 현재 미래의 경계가 없는 일상을 비틀어 놓은 세계. 그곳의 풍경은 뫼비우스의 띠(Möbius strip)처럼 세계를 비틀어 구조와 인식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재현한다. 실재와 허구가 동일한 존재의 무게를 가지고 우주의 법칙이 동일하게 작동하는 세계이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동시에 존재하기도 하고 동시에 부재하기도 한다. 동양과 서양이 혼융되는 곳이기도 하다. 개인의 경험이 개인의 영역에 갇혀있지 않은 보편적인 인간의 경험이 될 수 도 있는 세계의 풍경은 이렇지 않을까.

 

윤상윤의 경험은 그림을 그리는 행위에 대한 것이다. 절대적인 평범과 한 재료와 한 사건에 깊이 내려가는 장인의 태도 단지 그것이다. 여기에 이미지를 둘러싼 모든 신비가 있다. 그것은 화가의 운명이자 이미지의 운명이다. 우리는 그 기원을 알 수 없다. 화가의 이미지는 망각의 강을 건넌 운명인 것이다. 베니스를 닮은 장소는 바로 그 닮음으로 인해 불안을 예감하게 한다. 그곳은 망각의 강 어딘가에 자리한 미지의 장소가 아닐까. 사람들은 운명에 붙들려 망각의 강을 건너고 있으나 아무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작가의 재능, 노력, 열정으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설득하고 있으나 서로는 사실 결코 공감할 수 없는 다른 시간과 장소의 존재들이니 교감을 이루기는 난감한 것이다.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 세상을 창조하고 밤을 분해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한 방울의 물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또 사람들에게는 물의 운명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유동하는 이미지의 공허한 운명으로 미완성된 꿈의 공허한 운명이 아닌 존재의 실체를 끊임없이 변모시키는 근원적인 운명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으로부터 변화하고 유동하며 정착하지 못하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의 비극성에 사람들은 공감한다. 화가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들 또한 그 운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윤상윤의 이미지는 바슐라르의 한 방울의 물과 동일한 메타포이다. 이곳은 물위의 알렉산드리아처럼 세계의 지식과 정보와 존재가 모여 있는 도서관의 도시이자 역설적이게도 신이 부재하는 곳이기에 인간이 신의 역할을 부여받는 곳이기도 하다. 세계를 창조하는 노동과 이미지의 기원이 되는 장소 말이다. 모든 가치와 결별하는. 끔찍한 환각과 망각이 모여드는 곳. 세상의 모든 관습과 언어, 관념과 우상이 파괴되는 그리하여 신마저 해체되어 새롭게 출현해야하는 풍경은 이럴 것이다. 이미지의 기원 또는 이미지의 운명은 존재가 쉼 없이 유동하는 곳에 있다.

 


 

 


 

제5회 벽산희곡상 공모(마감일·발표일 변경)
제21회 NEXT Classic 공연-신서중학교
 

재단소개 | 오시는 길 | 연혁 | Contact us |  
- COPYRIGHT(C) 2013 벽산문화재단 ALL RIHGT RESERVED.
- 서울시 구로구 디지털로31길 12 태평양물산 2층 9호 (08380) | Tel : 02-3775-4001 | Fax : 02-783-8945 | mingsooooo@bseng.co.kr